국내외로 이름을 널리 알린 만권루 관광구역은 옥평산 기슭에 위치하였고 점지면적은 500여무이며,30여개의 관광명소가 있다.만권루는 서진의 유명한 역사학자, <삼국지>작가 진수가 공부하고 은거하던 곳이며,촉한 건흥년간에 건설하였다.당나라때 앞족에 감로사를 세워 건축군을 형성하였고 명,청나라때 과산으로 옮겼다.현재의 만권루는 1991년에 재건설한것이다.만권루는 3중루각으로서 기세장엄하고 짙은 한,위나라의 건물 스타일을 구비하였다.3개의 전시관에는 진수의 일생, <삼국지>주요 내용 및 영향,삼국 문물명품과 예술 진품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관내에는 2000여건의 역사자료와 1만여권의 서적,500여건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높은 역사가치와 학술가치가 있으며,예술성과 관상성을 구비하였다.만권루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진수의 옛 집을 볼수가 있는데 낮은 정원과 높은 고루가 서로 대응되고 있으며,푸른 돌과 샘물,작은 다리와 졸졸 흐르는 물은 삼국문화의 원천지이기도 하다.옛 집에는 위진시기 농경과 독서를 함께 하는 집안의 실내 진열을 모방하였고 진수의 집안을 보여주고 있다.진수는 고향에서 27년동안 공부에 열심하였고 자신을 닦은 생활상황을 보여주고 있으며,역대 제왕과 역대의 문사학자들이 진수에 대한 평가를 보여주고 있으며,삼국문화의 원천을 찾는 답사때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다.진수 옛집과 서로 마주보고 있는 초공사는 진수의 스승 초주를 기념하고자 세운 사당이며,대문,랑헌,정전과 정전 뒤켠의 초공묘로 구성되었으며,점지면적은 300㎡이며,기세가 장엄하고 녹음이 우거지며,소박하고 장엄하다.
진수,자는 승조이고 서진의 유명한 역사학자이며,서기233년,안한성 서부의 선비집안에서 태어 났다.어릴적에 아주 총명하고 글공부를 열심히 하여 18세에 성도태학이 되었고 초주를 스승으로 모시었다.22세에 촉나라에서 위장군 강유의 주박,동관밀서랑,산기황문시랑 직을 맏았다.서기260년,진수의 아버지가 별세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3년간 효도를 다하였다.서기263년, 촉나라는 멸망하되었고 진수는 안한에 은거하면서 역사를 연구하였다.서기268년부터 진나라의 저작랑,평양후상,치서어사 직을 맡았다.서기 297년에는 태자 중서자로 승진하였고 병에 의하여 65세의 나이에 별세하였다.
진수는 평생동안 학문에 열심하고 사람이 정직하며,불요불굴의 정신과 나라와 인민을 위하는 우리 나라의 고대 지식학자들의 걸출한 대표이며,세계 역사문화 명인이다.진사가 쓴 <삼국지>는 <사기>,<한서>,<후한서>와 함께 “전사사”로 불리운다.<삼국지>는 인민을 근본으로 하는 사상을 널리 알리고 농경작업을 중요시 하며,근검절약을 선호하고 인재를 중요시 할것을 주장하고 있다.진수가 쓴 역사저작 <삼국지>는 세계에 많은 영향을 준 삼국문화의 원천이며, <삼국지>가 형성한 삼국문화는 중화문화 보물의 명품이며,삼국지의 영향은 시공간과 국경을 뛰어 넘었으며,세계 문화사에서 독특하고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만권루는 짙은 삼국문화 분위기를 띄고 있어 “삼국문화 탐험 여행”과 지혜의 여행 목적지로 불리운다.
관광구역에서는 매년마다 삼국문화를 테마로 한 춘절대묘회,삼월삼 등산절과 삼국문화절을 개최하며, “삼국문화원”테마를 둘러싸고 영객축제,삼국역사 새로쓰기, <삼국지>명작 랑독 등 다양한 관광문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